시詩 [133120] · MS 2018 · 쪽지

2011-11-28 0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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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 부산에 눈이 내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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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눈이 내리면 북극곰이 운다
북극곰이 제일 먼저 동물원 쇠창살을 흔들며
으엉으엉 눈이 내린다고 운다
향수병 같은 거야 잊은 지 오래지만
제 똥을 짓뭉개고 앉아
우울한 덩치로 늙어가는 짐승의 슬픔을 과연
누가 알겠는가 눈이 내리면
그도 내심 몸속의 피가 뜨거워지는 것이다
콧김이 송골송골 맺힌 코를 벌름벌름
알 수 없는 서러움에 사무쳐서
북쪽을 향해 머리를 짓찧고 싶어지는 것이다
눈이 귀한 남쪽 항구 몇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부산에 눈이 내리면
하나밖에 없는 동물원에 눈이 내리면
북극곰이 정말 서럽게 운다
긴 목에 목도리 하나 없이 겨울을 나야 하는
기린은 이 겨울이 딱 질색이겠고
낙타도 코끼리도 시큰둥 썰렁한 우리 안에 들어가
전기스토브를 쬐며 덜덜 떨코 있겠지만
눈이 내리면 북극곰 눈에는 모두가
제 혈족으로 보이는 것이다
흰 털가죽 뒤집어쓴 북극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 부산에 눈이 내리면 나도 따라 울고 싶어진다
흰 털가죽 덮어쓰고 울타리 밖에 갇혀서
으엉으엉 울타리 흔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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