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과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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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1
사기인 줄 알면서도, 눈물은 믿게 한다.
-나르테크스 카이솔로(시인)
울음은 권장되지 않는다. 남자는 세 번 울어야 하는 사회인 데다, 질질 짜는 것은 망측하다.
그래서 마지막 수단이 된다. 울면, 갈 데 까지 간 것 같다. 그래서 상대방 마음도 녹아내린다.
그 어떤 논리, 해괴한 변명, 합리화에도 넘어가지 않았는데 눈물에는 넘어간다.
심지어 법정에서도, 요긴하다. 어느 형사재판이었다. 상대방은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전 애인이자 피해자.
나는 피고인을 변호했는데 기록을 놓고 보면 둘은 연정관계가 맞았고 돈은 연정에서 나온 것이 분명했다.
물론 변호인은 의뢰인의 말을 믿기 위해 '노력하기에' 그랬을 테지만 재판과정 확보한 녹취록은 분명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자기야~ 이 돈(2000만원) 일단 받고 나중에 천천히 갚아. 내가 자기 사랑해서 주는 거니 어려워하지 마요"
이쯤되면 아무리봐도 사기는 되지 않는다. 변호인이 확신을 얻을 때 변론은 훨씬 수월하다.
그렇게 재판은 잘, 진행됐다. "반성 많이 했지만 사기는 진짜 안 쳤습니다"라는 상투적인 피고인의 최후진술이 끝나자 갑자기 피고인과 한 때 내연관계였던 고소인이 벌떡 일어났다.
"판사님, 피해자로서 한 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정적이 흘렀고, 재판장은 지나칠 수 있지만 말을 해보라 했다.
"판사님, 저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서럽게 울었다. 너무나 서럽게.
어찌나 서럽게 울었던지 경위조차 어떻게 말릴줄 몰라 당황해했다. 보통 이 경우 재판장이 나서
"그만 우세요"라고 위엄있게 지시하지만 그녀의 울음에는 골계미마저 느껴져 아무도 막지 못했다.
그녀의 흐느낌이 1분 뒤쯤 그치자 나는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니 진짜, 뭔가 있나?"
그 어떤 표독스러운 말투와 정밀한 논리, 정갈한 문체도 내 확신을 흔들지 못했는데 눈물이 어느새 비집었다.
어느 사법교재도 변론전략 중 하나로 "당사자의 눈물"을 강조하지 않지만,
실무적으로 효과가 전혀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감정실무(1)" 같은?!
#눈물 2
지금은 봉쇄된 루브르 박물관.
파리 여행 중이었던 나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나리자를 보러 갔다. 30명이 모여 그림 보호를 위해 처진 장막 뒤에서 모나지를 봤다. 한참을 보며 속으로 "XX, 이게 뭐지? 아무 느낌 없는데"했지만 더러는 심각하게, 더러는 눈물까지 흘렸다.
어느 문인도 모나리자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데, 이런 울보들에게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명언을 인용하며 경고한다.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화가 몫이 아니다. 화가는 웃게 한다. 눈물은 감정을 교란시킬 뿐이다."
(이 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 말이다.)
그림을 보고 눈물 흘리는 것은 어떤 취급을 받을까.
현대미술계에선, 외면받는 듯 싶다. 미술사학자 대부분은 울음에 부정적이다. 감정에 약한 그들은 미술사학자의 강연을 듣고 정제된 '이론'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급기야 20세기에서 회화사는 눈물을 소거했다. 어느 누가 바스키야나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고 울겠는가.
17세기, 계몽주의와 함께 개인의 정서적 경험과 지적 고찰(낭만주의)이 강조되며 눈물은 권장됐다. 귀를 잃고 을 초연했던 베토벤의 눈물, 에 담긴 고흐의 눈물은, 괴상한 이념과 추리 게임으로 변질된 현대미술에 이르러 휘발됐다. 모더니즘 이전의 회화는 형상과 내러티브를 가졌지만 포스트모던은 이 무한한 다양성을 제거했고 눈물샘을 을 막았다. (심지어 18세기, 연암 박지원도 "모든 감정의 끝은 눈물"이라 했거늘!)
이제 눈물은 소설, 발라드, 영화, 드라마 영역이 됐다. 이들을 감상하며 현대인들은 눈물을 흘린다. 눈물을 터부시한 미술사학자들의 지적 스노비즘은 이제 경매 최고기록으로만 존재가치를 웅변한다. 까닭은 현대미술이 퇴보하는 사이 낭만주의 사조를 완전히 이어받은 소설, 음악, 드라마 등이 독립된 예술작품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간달프도, 눈물의 순기능에 주목했거늘!
"울지 말라곤 안 한다. 모든 눈물이 나쁜 건 아니니까."
<반지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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