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인이 자기 시가 나온 문제를 푼다면?'에 대하여..
게시글 주소: https://w.orbi.kr/0004463256
조금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겠으나.. 댓글보다는 글로 설명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글로 올립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요즘 한동안 오르비를 못 들어 왔네요.. 그런데 마침 수능 국어의 단골 떡밥인 '시인이 자기가 쓴 시를 풀었는데 틀렸다'가 화제가 되고있군요.. 그래서 이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국어국문학도이니 어느정도 감안하고 들으시길 바랍니다..
일단 '시는 독자의 것이니 자유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은 틀렸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기술자군님을 수능 국어 참고서의 저자로서 존경하지만 이것은 학문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는 문제이니 틀린건 틀렸다고 해야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위 명제가 틀렸음 과거 수능에 출제되었던 문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문학작품의 소통구조'인데요.. 독자와 작가는 문학작품을 매개로 소통합니다.. 작품 안에서도 분명한 소통구조가 있고(서사문학에서는 등장인물일테고 시문학에서는 대개 상정된 화자와 청자일 겁니다..) 작품 밖으로도 소통구조가 또 있습니다.. 문학의 소통적 기능을 공부할 때 꼭 배워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희곡의 소통구조는 아래와 같습니다..
실제의 작가-이상적 작가-현실적 작가-작품의 내부구조-현실적 독자-이상적 독자-실제의 독자
제가 최근에 희곡수업을 듣기에 희곡으로 예를 들었습니다.. 서사문학과 시문학은 엄연히 다르지만 어쨌든 작가-작품-독자라는 소통구조의 모델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 소설을 두고 보아도 작가-작품-독자의 단순한 3단구조가 아니라 최소한 4단 최대는 5단의 구조를 띱니다.. 거기에 대수능 출제라는 프레임이 하나 덧씌워지면 아무리 못해도 4단.. 최대 6단까지 갈 수 있겠죠..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이후에는 독자의 몫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작품의 열린 해석을 권장하기 위한 말일 뿐입니다.. 독자의 감상이 중요한 만큼 작가의 의도도 중요한 것이고.. 또 그만큼 문학 작품의 구조(문학의 장르적 형식?정도로 표현해야 될까요..)도 중요한 것이지요.. 사실 작가의 의도-작품의 장르적 성취-독자의 감상 이 세가지는 절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완결적인 소통구조로서 기능하는 것이기에 어느 한 쪽을 떼어놓고 이해할 수 없죠.. 작가의 의도가 전부일리도 없고.. 장르적 성취가 전부일리도 없으며.. 독자의 감상이 전부일 수도 없습니다.. 현대예술이 아무리 난해의 길을 걷는다고 하여도.. 문학을 포함한 예술작품의 소통구조에서 저 세 연결고리는 본질적으로 끊어질 수 없는 법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수험생이 왜 닥치고(^_^;) 평가원의 사고에 충실하게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지.. 다시 말해 '시인이 자기 시를 풀어도 틀린다는데 왜 수능 문학 공부를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저희 학교 교수님중에 수능 출제 위원 경험을 한 분이 계신데.. 그 분의 말을 인용하자면..
'수능이나 평가원 출제에서 작품 선택을 할때에는 철저하게 학계의 상황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이미 학문적으로 해석에서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는 작품을 출제한다는 것이지요.. 평가원은 바보가 아닙니다.. 수능 문제 하나 내는데 천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가고.. 평가원은 백만원 단위입니다.. 그런데 과연 문제가 생길만한 작품을 낼까요? 절대 아니죠.. 그렇다면 어떻게 문제를 내야 문제가 안생길까?(언어유희 ^_^) 안전빵을 거는 것입니다.. 학계에서 작품 분석을 할 때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는 작품을 선별하는 것이죠.. 시 출제 지문이 수능 역사 이래로 '널리 알려진 시-공부 열심히 하면 아는 시-생소한 시'의 구조를 거의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최근에야 두개짜리 시 지문이 보이기 시작하는거고.. 그것도 '널리 알려진 시 - 생소한 시'의 구조로 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널리 알려진 시'가 바로 학계에서 이견이 잘 없는 시입니다.. 이 '널리 알려진 시'를 기준으로 문제를 내기에 공부 열심히 하면 아는 시와 생소한 시는 보통 상대적으로 해석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고요.. 이렇듯 평가원이 문학을 출제할 때는 철저하게 학계의 권위를 전적으로 존중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최승호 시인은 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최승호 시인의 발언은 수능 출제 원리 및 현재 국어교육에 대한 불만도 분명히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학계(국문학계+국어교육학계)에 대한 반발이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인터뷰 내용 중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 두고 싶다. 나도 생각하지 못한 정답이 어떻게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바보라서 모르는 건지…. 그렇지만 문제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거 같다. 나는 감정과 예술의 자리에서 얘기하고, 수능은 이론과 논리의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을 보면 더욱 그러하네요. 원래 장르예술에서 창작자는 비평가(학계)를 혐오할 수 밖에 없거든요..^^;; '작가의 의도-작품의 장르적 성취-독자의 감상' 모델에서 '작품의 장르적 성취'에 해당하는 부분을 평가하는 것이 학계인데, 작가의 의도랑 끝없이 부딪치고 화해할 수 밖에 없는 구조거든요.. 이건 본질에서 좀 벗어난 부분에다 개인적인 추측이니(그리고 민감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만 줄이고..
아무튼 결론은 작품 감상의 측면에서도 '작가-작품-독자' 모델이 여전히 적용되며 수능 출제는 학계의 권위를 존중하는 형태로 출제되니 의구심 품지 말고 평가원의 사고에 몰두하는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_^ 애초에 문학 작품 이라는 것이 논리를 배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고요. 자유로운 감상도 좋지만 그 감상엔 논리가 꼭 따라야 한다는 점 절대 잊지 마시고~ 수험생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러셀단과 의무수강 들었는데 제가 원하지 않는 단과를 들은 거여서 휴원하면서 단과 안...
저는 사실 기술자님의 그 글을 보고서
교재에서 느꼈던 것과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저게 본질일까?'
그분의 교재와는 상관 없는 글입니다.. 죄송..
개인적으로 기술자군님을 수능 국어 참고서 저자로서 존경합니다.. 내용에 동의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그만한 퀄리티로 책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아니까요.. 열정이 있는 분 같아 보이고.. 문학의 개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전공자가 아니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제 의구심은 오르비 내에서 주목받는 다른 분에게..
그리고 수능 국어의 본질은 두개라고 봅니다.. 하나는 지문에 실린, 그리고 앞으로 실릴 글 자체.. 다른 하나는 유형.. 글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은 솔직히 수능형 공부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아예 역발상으로 접근해서 기초적인 수준에서 글을 쓰고 글이라는 것을 이해해야하는데(마치 논술수업처럼).. 대한민국 수능 교육시스템에서 그게 진짜 될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능 200일정도 남았는데 국어 공부랍시고 기초적인 논설문 설명문 쓰고 첨삭해주면 수험생 입장에선 선생님 멱살을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글에 대한 본질적 이해는 어느정도 수준에 한정시킨 다음 수능에 대한 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고.. 사실 유형적 접근으로 글을 많이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기도 하고요.. 수능/평가원 국어 기출 전부 모아놓으면 1000페이지는 될건데 이걸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이니.. 네 아무튼 그렇습니다..
제 글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산적인 토론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제가 말한 맥락은 '아무리 시인이라고 해도 독자에게 자신의 의도대로 감상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였죠. 아마 전공자시니 아래와 같은 내용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대한 개체적 지식을 알기 위해서는 그 시가 담고 있는 생각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시가 담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가 하는 점도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작품을 읽는 주체가 어떤 관점에서 작품에 접근하는가에 따라 작품에 담겨 있는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_국어 교육의 이해(사회평론, 2012)
/
쓰신 글에서 작은따옴표로 쓰신(제 글에는 저런 문장이 없었습니다만...) '시는 독자의 것이니 자유롭게 해석되어야 한다'에서 '자유롭게'가 '자기 마음대로'라면 저도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이 주제로도 한 번 글을 길게 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