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단편]이어폰
게시글 주소: https://w.orbi.kr/0006741251
이어폰이 2개 있다.
각각 둘 다 수십만원의 물건들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음악은 좋게 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산 물건들이다.
하나는 바깥의 소리를 막아줘서 좋다.
그런데 뭔가 꽉 막힌 느낌이라 귀가 아프다.
나머지 하나는 뚫린 느낌이라 귀가 편하다.
그런데 바깥 소리를 하나도 막지 못한다.
오늘은 조용한 곳에 갈 것 같다.
그래서 두번째 이어폰을 골라 밖으로 나선다.
서울역에 도착해 패스트푸드점으로 간다.
이곳은 시끄럽잖아.
금새 두번째 이어폰을 가져온 것을 후회한다.
하지만 내 선택으로 일어난 일이니 화가 나는 것은 아니다.
주문한 음식을 들고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본다.
군인들이 많다.
휴가나왔겠지.
팍 인상을 쓴 외국인이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마 비즈니스 때문일거야.
내 옆자리엔 남루한 행색의 노숙자가 앉아 있다.
아무 음식도 주문하지 않은 채, 무언가를 계속 적고 있다.
그의 발치에는 페트병이 여럿 담긴 비닐봉지가 있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그는 어디서 모든 옷을 주워입은 듯한 기괴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윗옷은 검은 폴라티, 하의는 몸빼바지다.
아마 궂은 일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가 갑자기 졸기 시작한다.
머리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저러다 옆으로 쓰러져 다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느새 그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니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나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옆자리의 남루한 행색의 남자에게 내 음식이 담긴 트레이를 주었다.
남자는 퍼뜩 깼다.
일어나서 나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며 욕을 한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그 남자의 침이 내 얼굴에 튀기도 한다.
하지만 난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남자는 나에게 콜라를 뿌렸다.
차가웠지만, 옷은 빨면 되는 것이기에, 화가 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나와 남자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나도 유명인이 되는구나 싶었다.
아, 조용한 곳으로 가기로 했었지!
나는 잔뜩 화가 난 남자를 뒤로하고 매표소로 갔다.
이어폰을 끼고 매표소까지 걷는다.
하지만 바깥 소리를 못 막는 이어폰 때문에 남자의 목소리가 살짝 들려온다.
상관없다. 오늘 갈 곳은 조용한 곳이다.
나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곳으로 가는 표를 산다.
여기라면 조용한 시골이겠지. 하며 상상에 빠진다.
자판기와 벤치만 놓여 있는, 사람은 없는 조용한 간이역.
매표소에는 게으른, 하지만 손님 앞에서는 성실한 직원이 앉아 있겠지.
새로운 사람들도 만날 것이다.
그들의 성품도 또한, 그곳처럼 차분하고 조용하겠지.
따위의 상상을 하며 플랫폼으로 내려간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마주친 인연도 인연이겠지.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그런데 주변이 시끄러워서 이어폰 때문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시끄러운 주변 사람들이 짜증나기 시작한다.
갑자기 나에게 욕설을 하며 콜라를 뿌린 남자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콜라의 설탕 때문에 손이 끈적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화가 난다.
이게 다 남루한 복장의 남자 때문이야. 생각한다.
그를 찾으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시 올라간다.
남루한 복장의 그는 가방을 메고 이상한 봉투를 가득 든 채로 서 있었다.
그가 뭘 하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준 음식도 맛있게 먹었을거야.
그래놓고 고맙단 말도 하지 않았단 말이지.
나에게 콜라를 뿌리고도 양심의 가책을 못 느꼈을 거야.
나는 점점 더 화가 났다.
여긴 사람이 많으니까 기다리자. 저 남자를 쫓아가자. 조용한 곳으로 갔을 때 덮치는 거야.
남자도 열차를 기다렸던 것인지, 플랫폼으로 내려간다.
플랫폼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그래서 나의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짜증과 분노가 솓구친다.
나에게 이어폰은 소중한 물건이지.
그래 이게 얼마짜린데, 저 남자는 구경도 못할 물건이야.
그런데 내 이어폰을 이렇게 무의미한 물건으로 만들다니.
저 남자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아야겠다.
10분 뒤 열차가 들어온다.
남자는 안전선에 서서 열차를 기다린다.
나는 조용한 곳으로 갈거야.
조용한 곳으로 가서 저 남자를 혼내줄거다.
소중한 것도 빼앗고, 저 남자의 얼굴에 침도 뱉을 거다.
나에게 했던 짓들을 똑같이 돌려줄거야.
마지막엔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들어야지.
무릎을 꿇릴거야.
생각을 그만 둔다. 행동을 할 차례다.
열차가 들어온다.
그 남자가 안전선 위에 선다.
나는 그 남자를 껴안고 열차의 앞에 선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사실 보스턴 차사건은 영국이 다른세금 다없애주면서 홍차세만 냅두자 네덜란드...
-
혹시 국어 기출 중에 2309 크리스마스 캐럴 5를 아시나요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
무슨 기능 추가됐는지 나무위키 읽는 중
-
내년 기출+실전 개념 어느 강사 분꺼 들을까요 메가 대성 둘 다 구매할 예정,,,
-
배경이 80년대 동독서독 오마주 같은데 이러면 통일엔딩이려나
-
안정2이상 목표인데 미적.화학.지구 과목별로 실모 추천좀 부탁드립니다!
-
상사상애 5
가 아니야~ 의심할 여지도 없이 사랑은 없어
-
2등급 통통이임 정병호t: 이해 잘 되고 강의템포가 무난무난해서 전체적으로는...
-
기습 지과퀴즈 13
대륙붕의 기울기는 얼마일까
-
분위기 환기용 9
키타짤 투척
-
“남편 기일에 큰 선물 받아”…명절에 더 그리운 가족·동료 위한 소방청 영상 0
“오늘(17일)이 기일이거든요. 누군가 그 하루라도 ‘이런 소방관이 있었지’ 하고...
-
찾으면 금방 나오는 걸 왜.. ㅠㅠ 아쉽습니다
-
사탐도 투과목생겼으면 좋겠다
-
감다디젹네 0
도용은 맛이없어요 가루씨
-
가능충) 4
지금부터 달리면 의대 가능할까요?ㅠㅠ 간절합니다
-
늦은시간이지만 4
즐거운 추석 되세요
-
운동하고 오는길에 찍었어요 잘찍었죠 히히
-
할머니댁인데 답지를 안가져왔...
-
투과목을 한다는건 12
의대에 갈 확률을 낮추는 속박으로 서울대 가산점을 얻는다는것
-
1: 스키니핏 바지나 핫팬츠 2: 와이드팬츠+크롭티 3: 치마 4: 걍 지나가는...
-
이해원 n제 4규 끝낸 상탠데 설맞이 바로 밑에급 난이도 n제 풀고 설맞이 들어가려는데 뭐 풀까요?
-
수능특강, 수능완성 주요문항 정리교재입니다.
-
김범준 강의를 사면 오는 부산물일 뿐임
-
너무 어려운거 말고 이해원 시즌2 모고정도면 풀만해서 그정도나 혹은 그거보다 좀 더...
-
저 분이 쓴 글이나 댓글 읽고 현웃 터진게 ㄹㅇ 한 두 번이 아님
-
난 겨우 간쓸개 1일차 토탈리콜 강의 2개 듣고 열심히 했다고 좋아함.. 열품타...
-
강대 x만 살수는 없는거죠?
-
익숙한 느낌이구나…
-
수능 두달전 느낌이 안나잖아;;; 나 아직도 선풍기없으면 잠을못잔다.. 날씨체감상...
-
고2 모고 최소 몇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영어 4-5 나오는 허수인데 구문공부...
-
근데 허수를 벗어날 수 없어서 수시 제발 붙여달라고 조상님 38161명께 비는중
-
아수라 뭔가 0
학습 방향 설정만 봤는데 끓어오른다
-
좋아요.. 눌러야겠디?? 혹시라도 잘못 정리한게 있다면 댓글 달아주세용 1단원...
-
형 밥 먹고 온다
-
나 이제 자러 갈게 내일 다시 자극적인 글 생각해올게
-
정신나갈꺼같다
-
나무위키에 김세홍좀 검색하려고 구글켰는데 나무위키라는 말을 까먹어서 끙끙앓다가...
-
사탐 안받는다는데 이거 진짜임?
-
현역 4?5? 재수5등급 받고 삼수부터 쭉 1만받음 걍 공부법문제임 공부량은...
-
보름달이 밝구만 1
밝다 소원 빌어야 하는데
-
나였으면 내 대에서 그 빌어먹을 유전자 끊어버렸음
-
영어는 사람 ㅅㄲ면 최소 2등급은 나와야 하는 거 아님? 워마 2000 영단어 다...
-
밥 먹으니까 지금 딱 자면 달콤할 것 같은 잠 온다…. 이 잠을 못 자다니…..
-
윈드러너, 몬스터 길들이기, 템플런
-
이미 고백해버려서 어쩔 수 없구만 크리스마스에 운명처럼 100일 되는 건 아쉽지만 없는걸로
-
애초에 남자가 X 두개 가졌으면 유전 걍 껌이었겠지 솔직히 얘네가 X 한개만...
-
결국 명확한 근거 제시를 못하는 낭설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아니라고 하기도...
-
자세히 반박하는 논저로는 허수열 교수의 "개발 없는 개발"이 있으니 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와 이번 것은 아무리 봐도 진짜 못 썼다.
그래서 결론은 동반 자살인가요?
초중반에 정말 좋았는데 후반에 갑자기 끝나서 무슨이야기인지..
동반 자살은 아니에요. 남루한 행색의 남자는 죽으려던게 아닙니다. 주인공인 "나" 는 완전 또라이인 것이지요. 물론 저는 저 정도로 또라이가 아닙니다. 살짝 또라이에요.
ㅋ 내용이랑은 상관없지만 진짜 이어폰 수십만원짜리 쓰시면 디바이스는 뭐쓰세요? 애플기기들은 그래도 이어폰 가치에 좀 상응한다던데 추가적인 궁금합니다. 저도 요새 음향기기에 꽂혀서 이것저것 정보 모으는중이거든요.
저는 애플기기 씁니다. 가격대에선 플랫하고 깔끔한 음색을 가지고 있어서 이어폰의 특성을 잘 살려주는 편이거든요. 돈이 많다면 AK100 같은 것을 쓰겠습니다만... 전 가난하니까요.
역시 애플쓰시는군요. 다들 가격대 성능비는 애플인가보네요. 애플기기가 싼건 아니지만 고가 이어폰대비 가격으론 염가긴 하죠 ㅋ
으어어 빨려들어간다
코드킴님 프사 시바 언제봐도 귀엽네요 시바견
#못씀 #노잼 ㅇㅈ합니다ㅎㅎ ㅋㄷㅋㄷ
ㄹㅇ 이건 흑역사급임
책내면 싸인해서 주는부분?
싸인본은 2000원 더 받고 팔겁니다.
se846? 뚫린 이어폰은 a8인가요 ㅋㅋ
오픈형은 atomic floyd airjax 입니다.
아 실화인 줄; 소설이라니 다행이네요.
이제 날씨 추워지기 시작해서 노숙자분들 좀 걱정돼요. 시에서 어떻게 지원 안 되나..
실화면 정말로 끔찍하네요. 다행히도 픽션입니다. 시에서 지원하긴 하죠. 여러 단체에서도 무료 급식소 같은 것을 지원하기도 하고... 물론 그것들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고기 잡아다 주지 말고 낚싯대와 고기 잡는 법을 지원해 줘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