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주고 받는 일은 마치 지뢰밭에 발을 들여놓는 느낌이다. 요즘 같은 경제 상황에서는 돈이 없어 곤경에 처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리고 아끼는 사람이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돈을 빌려줬다가 우정이 깨지고 가족 구성원과 사이가 험악해졌다는 이야기는 워낙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게다가 정작 당신이 돈이 필요할 때에 돈이 없어 쩔쩔 맬 수도 있다. 심리학자이자 TheFriendshipBlog.com을 만든 아이린 S. 레빈 박사의 말이다. 돈을 빌려 달라는 사람이 돈을 갚으리라는 확신이 들더라도, 돈을 빌려주어도 괜찮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본 매체에서는 재무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지갑을 열기 전 고려해 봐야 할 다섯 가지 법칙을 정리해 보았다.
법칙 1. 진정으로 빌려주고 싶을 때에만 빌려준다
레빈 박사는, 돈 빌려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나 진짜 너무너무 급하거든…”)에게 죄짓는 기분이 든다거나, 빌려주겠다는 말이 입에서 선뜻 안 나오고 망설여진다면("안 빌려줬다가는 나쁜 사람이란 평을 듣겠지." 라든가 "이런 걸로 마음 고생하고 싶지 않은데."), 빌려주지 말라고 말한다.
빌려주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돈을 빌려준다면 나중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상대방이 돈을 갚을 때가 되기도 전에 사이가 벌어질 수 있다. 레빈 박사의 말에 따르면 돈 빌려달라는 부탁을 거절한다고 해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거나 나쁜 친구가 되지 않는다. 부탁을 거절하면 당신의 돈을 지키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레빈 박사는 “나도 정말 도와주고 싶은데, 지금 당장은 나도 여유가 없어서 말이야…” 같은 식으로 감성에 호소하여 부드럽게 거절하는 법을 제안한다.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면, 최근에 갑자기 돈 쓸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 의료보험료가 올랐다거나, 자녀가 대학 갈 때 등록금을 주기 위해 돈을 모아야 한다든가 등.
그런 다음 다른 돈 빌릴 곳이나 (상대가 빚을 갚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경우라면) 빚을 줄일 방법을 상대와 같이 생각하고 의견을 보태준다면 사려 깊은 행동이 될 수 있다. 진정한 친구, 친지라면 당신이 거절해도 마음 상해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도움이나 의견을 고맙게 받아들일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그러지 않는다면, 마지못해 돈을 빌려주는 것보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편이 낫다.
법칙 2.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의 금액만 빌려준다
당신에게 돈을 꾼 친구나 가족 구성원이 믿을 만한 사람, 돈 문제에서 확실하고 신뢰 있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아보았음에도 “당신에게 원래 돈을 갚기로 한 때에 맞추어 돈을 갚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공인 재무설계사이자 텍사스 주 더 우드랜즈 주재 유나이티드 캐피탈 파이낸셜 어드바이저스의 지사인 엘리스 앤 엘리스의 대표 바이런 엘리스의 말이다.
엘리스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사람은 갚아야 할 빚의 순서에서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돌려주어야 할 돈을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자동차리스 뒤" 맨 마지막에 놓게 마련이다. 자, 당신이 빌려줬던 돈을 꼭 받아야 하는 사정이 생겼는데 상대는 돈을 갚을 형편이 못 된다면 그때 당신이 받을 스트레스와, 상대와 당신 사이에 조성될 긴장을 생각해 보자.
요점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돌려받지 못해도 괜찮은 수준의 금액, 본인의 재무설계 목표, 각종 요금이나 카드값, 또는 다른 인간관계를 위협하지 않을 정도의 금액만 빌려준다.
법칙 3. 돈을 돌려받을 시점을 명확히 정한다
10년 전, 에밀리 화이트(43세, 가명)는 나이 든 부모님이 계시는 근처에 집을 사겠다는 여동생에게 돈을 갚을 기한을 정하지 않은 채 2,300만원을 빌려주었다. 화이트는 “난 동생이 부모님을 돌볼 만한 거리에 산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돈은 동생이 자리를 잡고 직장을 새로 구하고 나면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죠. 동생은 다른 주에서 이사오는 거였거든요.”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화이트의 여동생은 생각이 다른 듯했다. 화이트는 “동생이 취업을 해서 일을 한 지가 몇 년이 되었는데도 지금까지 돈을 갚겠다는 말이 없어요. 그 돈을 10년도 지난 후에 갚아도 된다고 합의한 적은 없는 걸로 아는데 말이죠. 딱히 화가 나는 건 아니지만, 이제 어디에 투자를 좀 해볼까 해서 그 돈이 있으면 좋겠어요.”라 했다.
에밀리 화이트의 실수는 돈을 갚는 문제에서 자신과 여동생이 같은 의견을 지녔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러 모로 신중하게 계획해서 돈을 빌려주었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너무 딱딱하고 사무적으로 비치겠지만, 엘리스는 “양측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상환 조건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얼마만한 금액을 빌려줄 것인지, 이자율은 얼마인지, 언제까지 갚을 것인지를 상의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돈을 갚을 사람은 언제 돈을 마련해야 할지 알 수 있고, 돈을 받을 사람은 그 돈이 언제 자기 계좌로 돌아올지 파악할 수 있다.
엘리스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상환 일정을 못박아 두면 행여나 돈을 빌린 사람이 그 돈을 “그냥 받는 선물”로 착각할 위험이 없어진다. 또한 돈을 갚는 것을 자꾸만 미루면서 “네가 그 돈이 그렇게 빨리 필요한 줄 몰랐어.”라고 변명하는 상황도 피할 수 있다.
엘리스가 위에서 언급했듯, 빌려준 돈에 이자를 붙이고 그 이자를 언제 받을 것인지도 상환 일정에 포함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남에게 빌려준 돈은 금액에 따라 복잡한 과세 법규가 적용될 수 있으므로, 이자를 받지 않았다가는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이런 문제를 피하려면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적용연방이자율에 따른 이자를 받는 것이 좋다.
법칙 4. 금액과 조건을 서면으로 작성한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우선순위는 바뀌며, 원래 쌍방이 동의했던 조건은 친구나 친지 사이에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현재 핏 스몰 비즈니스의 재무 전문가이자 기업 변호사이기도 했던 프리얀카 프라카쉬는 말한다.
빌려준 금액과 상환 조건을 서면으로 작성해 두면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정식으로 차용증서를 쓰면 돈을 빌리는 사람이 돈을 빌리는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제때 갚을 가능성이 커진다.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게 되면 차용증이라는 이 종이쪽지를 들여다보면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결정해야죠. 우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게 됩니다.” 엘리스의 말이다.
간호사 리사 슈뢰더(49세)는 보조간호사 프로그램에 등록하려는 직장동료를 도와주기 위해 175만원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을 작성하기로 했다. “그 사람을 매일 병원에서 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든 걸 서면으로 작성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그 사람도 나도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녀의 판단은 선견지명이었다. “우리가 합의했던 대로, 그 사람이 2주일에 한 번씩 일정 금액을 갚아나갔어요. 그리고 우리가 이런 계약을 한 덕분에 그 사람이 훌륭한 보조간호사가 된 것을 보니 정말 뿌듯했지요.”
프라카쉬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차용증서를 작성하는 데 변호사를 고용할 것까지는 없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좀더 복잡한 상황이라면, 가령 담보물이 있거나 1,000만원 이상의 금액을 빌리는 일이라면 변호사를 부르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차용증서에는 돈을 빌린 날짜, 금액, 원금을 모두 갚아야 할 날짜, 상환 일정, 상환이 늦어졌을 경우 추가되는 금액(아래 다섯 번째 규칙 참조)이나 이자가 포함되는 것이 좋다. 돈을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의 각종 연락처, 양측의 서명(손으로 직접 쓰든 전자서명이든)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 프라카쉬의 말이다.
정식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면 온라인에서 차용증서 서식을 검색해 본다. 이런 서식이 있으면 돈을 갚는다는 약속을 명시하고 각종 중요한 세부사항을 모두 포함시킬 수 있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돈을 빌리는 사람만 서명을 해도 유효하지만, 이왕이면 돈을 빌려주는 사람도 서명을 하는 편이 낫다. 혹시 법정에 가야 할 상황이 생기면 양 당사자의 의도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라는 프라카쉬의 조언이다.
법칙 5. 돈 갚기를 미루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
받아야 할 돈이 제때 들어오지 않는데도 그냥 넘기거나, 돈 빌린 사람에게 말하기가 껄끄러워 자신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면, 지금 실수하는 것이다. 돈 빌린 사람은 차츰 돈을 갚기로 정한 날짜가 반드시 엄수해야 할 규칙이 아니라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가이드라인 쯤으로 여기게 될지 모른다.
좀 더 사무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용해 먹는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저도 전에 친구에게 돈을 빌려줄 때 이런 일이 있었죠.” 엘리스는 차용증서를 쓰면서 돈을 갚을 날짜를 넘겼을 때의 위약금에 대해서도 상세히 명시하라고 조언한다. 친구는 갚아야 할 돈 외에도 위약금을 내야 한다. 이렇게 조건을 정해 두면 돈 갚으라는 독촉을 보내야 하는 일이 고맙게도 없어질지 모른다. 또한 괜히 은행가 행세를 했다고 후회할 일도 없어질 것이다.
엘리스의 조언에 따르면, 친구에게 위약금을 부과하기 전에 닷새 정도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돌발상황이란 것은 언제든 생기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돈 갚을 날짜를 여러 차례 그냥 넘기고, 이메일을 열어보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식으로 돈 갚는 일을 미루는 것이 점점 범죄 수준이 되어간다면, 변호사의 자문을 구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래도 돈을 갚지 않는다면 법정에 데려갈 수 있죠.” 프라카쉬의 말이다.
돈을 빌려주고 시일이 많이 지난 뒤에 한꺼번에 돌려받기로 했다면, 돈을 받을 날짜보다 한 달쯤 전에 이메일을 보내어 상환 조건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현해도 좋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 조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나도 좋았다. 그런데 우리가 전에 서명했던 차용 조건을 보면, 내가 빌려준 돈은 6월 15일까지 갚아야 한다고 되어 있네. 혹시 네가 참조할 만한 사항이 있을까 해서 원본을 찍어서 첨부할게.”
우와.. 좋은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