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답안구조 암기에 대한 단상
게시글 주소: https://w.orbi.kr/00032130565
안녕하세요 아레테입니다.
모평 전 마지막 주말아침이네요. 다들 준비는 잘 하고 계시겠죠?
논술입시에 있어서도 9평이 가지는 의미가 큽니다. 9평이 끝나고 나면 6월과 9월 점수를 기반으로 최악, 최고의 상황을 가정해서 수시카드를 쓰게 되니까요.
9월 모평은 운빨로 대박 터지지 않는 것이 이롭습니다. 괜히 점수가 공부했던 것보다 잘나와버리면 그것을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고 자만하기 쉽거든요. 딱 공부한 실력만큼만 보고 정확한 진단을 통해 더욱 열공하시기를 바랍니다.
/
그제 첨삭관련해서 상담을 해주다가 한 학생이 제가 과거에 언급한 모범답안 구조해체법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었습니다. 거창한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저만의 컨텐츠이다보니 공개할 수 없다고 양해해주십사 말씀을 드렸지만 덕분에 오늘까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됐어요. 이왕 한 생각, 글로 한 번 남겨둘까 합니다.
저는 논리학을 배우고 처음 논술을 독학할 때, 글쓰기의 막연함에 압도되어서 연필을 한 시간을 넘게 쥐고도 단 한 글자도 적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논리학을 배웠다는 사실이 더 독이 되었던 것 같네요. Formal, Informal logic을 모두 만족시켜서 반드시 sound argument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거든요. 그래서 제시문에 밑줄만 열심히 쳐댔죠. 글은 한 자도 못쓰구요.
그러다 그 막연함을 깨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것이 바로 모범답안을 해체해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단구조를 유형화하는 일이었습니다.
'합격자들의 도입부는 보통 이렇게 시작하고 이렇게 마무리하는구나.'
'합격자들의 답안에 어휘들은 이런 뉘앙스를 가지는구나.'
'합격자들은 문단구성을 저런식으로 나누는구나.'
답안의 틀을 완성하고나니 마음의 부담감이 현저히 줄더군요. 제가 미리 정리해둔, 그래서 이미 외워져있는, 그 틀에 키워드만 박아넣으면 글이 한 편씩 완성되었으니까요. 당시에 저는 제가 논술천재라고 생각했어요.
이건 혁명이다! 키워드만 잡아내면 나는 모든 논술 답안을 쓸 수 있어! 하면서요.
그런데 세상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죠ㅋㅋ. 그렇게 한참을 쓰다보니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단순한데요. 그 정도로 쓰는 사람은 너무 많다는 거에요. 변별력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답안은 못봐줄 정도는 아닌데 안정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겠다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논술 노베이스가 처음 딱 시작할 때 글쓰기에 대한 막연함을 해소시켜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러면서도 변별력을 갖는 구조를 잡아낼 수 있는 걸까?
답이 안나오더라구요. 저에게 논술의 물꼬를 터준 소중한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곤경에 처하니까 너무 갑갑했어요.
저는 철학을 배우면서 가장 좋은 건 답답함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그 무언가를 끌고와서 나에게도 적용시켜보는 것이었는데요. 그래서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시도해봤습니다.
아, 잠시 스포를 좀 하자면 제가 시작한 alone 연재에서 곧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다룰 건데요. 그 책을 보면 과학이론은 기존의 성과들이 누적되면서 진보하고, 그것이 어느 임계치에 도달하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해요. 그래서 저도 그 생각이 들어, 패러다임을 뒤집어보려고 해봤습니다. '아 어쩌면 구조를 잡는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걸까?' 하고요.
그러니까 답이 보이더라구요. 구조를 방향으로 치환시켰습니다.
완벽한 틀을 가지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글 구조의 방향성을 잡고 시작하는 것으로요. (개요짜기와는 살짝 다릅니다.)
아마 이게 무슨 차이가 있느냐하고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을거에요. 하지만 제법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융통성'에서 나타나요.
글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면 논제에 따라 혹여 생경한 발문이 등장하더라도 융통성있게 비비고 넘어갈 수가 있어요. 그에 비해 엄격한 답안구조를 외우고 있는 친구들은 그런 융통성이 발휘되기 힘들죠. 외우던 틀하고 딱 들어맞지가 않거든요. 그건 시험장에서 불안함을 낳고, 불안함은 멘붕을 부르고, 결국 아는 것도 제대로 못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사소한 부분이니까.. 하고 무시하고선, 가지고 있던 답안 구조대로 쓰고 나와요. 그랬다가 그 무시했던 부분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있죠. 주로 대형학원이나 인강을 통해 논술을 배웠다가 떨어지는 경우는 이런 케이스가 많더군요. 혹시 이 글을 읽는 학생들 중에도 논술실패의 경험이 있다면, 학원에서 논술답안은 이러이러하게 쓰고 키워드를 넣으라고 배우진 않았나요? 되돌이켜 보면 아마 꽤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배웠을겁니다.
결국 요약하면 이래요.
처음 논술에 접근성을 높이려면 구조틀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을 저는 '장려'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수능 이후 논술고사 직전에 처음 논술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요. 이런 학생들은 그동안 학생이 살면서 무의식중에 갈고 닦았던 사고력과 어휘력으로 승부하는거거든요. 감점 당하지 않을 정도의 구조만 들고 가서 내가 살아왔던 삶을 무기로 싸우는겁니다. (사실 이 사람들은 일찍하든 늦게하든 누구한테 배우든 붙었을 거에요. 사고력이 다르거든요.)
반면에 논술 글쓰기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학생들은 고정적인 틀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 좋아요. 대신 그 틀을 활용해서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고 가는거죠. 딱딱한 나뭇가지를 들고 싸웠다면 조금 유연한 회초리로 바꿔 들고 싸운다고 생각하면 쉬울까요? 딱딱한게 단단하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쉽게 부러지곤 하잖아요. 내구도는 오히려 유연한게 좋아요.
논술도 마찬가지에요. 사고는 유연할수록 단단한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채점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창의력'과 연결되구요. 창의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보통 합격권에 들어요.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이 창의력에 대해서도 적어볼게요. 쓰다보니 많이 길어졌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ALONE 1회차 제시문은 인쇄하여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벌써 늙은건가 1
밤샘이 힘들어요
-
과제 다 했다 4
ㅅㅂㅋㅋ
-
앱스키마 교재패스사서 이미 있는데 6~8회살려면 아수라일지라도 패키지를...
-
안녕하세요 애매한 노베입니다... 수학, 국어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5
내년 수능 준비할 직장인입니다다름이 아니라 수능판에 몇년만에 뛰어드는 거라 수학을...
-
근황 1
3일전 - 밤샘 어제 - 2시간 취침후 일어나 시험공부, 학교에서 기절(점심시간에...
-
하지먼 그런일은 없어요
-
연대 궁금한거 1
이번 논술사태때문에 궁금해서 비리 찾아보니까 옛날부터 뭐 많던데 걸리면 비리로...
-
확통 기하 다맞을거 아니면 미적해라 화작 다맞을거 아니면 언매해라 사탐 과탐...
-
아침먹으러가야지 5
끼얏호우~~ 24시 해장국 고고혓
-
수능멘탈관리꿀팁 5
긴장 안하게 재수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시험치면 잘됨 난 그래서 미리 재수 허락 받고...
-
즐기지 못한 청춘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테고 20대를 놀면서 보낸사람은 노력하지 못한...
-
선착순 14
덕코
-
집에가고 싶어요 5
-
잇올 분위기 11
적막하게 공부하는 분위기임? 조용했으면 좋겠는데..
-
고3 올라오는 겨울방학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수능공부를 못했고 1학기땐 내신이랑...
-
예비고3마계동넨데 결방학 이투스vs잇올vs러셀vs스카vs독서실 추천부탁드려요 0
지금은 스카 다니면서 평일평균 순공 6시간 주말평균 순공 7시간쯤 하는데 기말...
-
국어 등급컷 생각보다 높지 않어..? 나만 그런가 언매미적 97 92 나오긴...
-
드디어 좀 잡히기 시작했어
-
19수능 천변풍경 오발탄 보기문제 같은 거 나오면 근거 찾고 한 번 더 확인한다음에...
-
그게 나야 바 둠바 두비두밥~ ^^
-
2024.10.15(화)에 실시된 2024학년도 10월 고3 모의고사 수학영역...
-
1등급 맞는데 지장없지 않나요? 킬러지문들 보면 정답률 53 30 45 30 이런...
-
하면 문학이 완벽해지는 걸까요?
-
입시 한참전에 끝났는데 나처럼 걍 심심해서 기웃거리는 사람 있음?참고로 본인 이미 대학 3학년
-
제발 0
-
공하싫 0
.......
-
휴
-
이게 맞냐? 2
지금 수학 완전히 성적이 무너져 내려서 고민입니다…6모 3, 9모 4,10모 4...
-
반도 못 쓰고 하루가 다 가버림...
-
"고전명저북클럽" 매주 지정된 책을 읽고 토론하고 발표까지 하는데 시험범위가 책...
-
으에에 4
9도네 시험보기 좋은 날씨
-
오래 앉아있으니 허리랑 어깨가 맛이 가서 도수치료같은 거 받으려는데 맛집 있을까여
-
(국어)강기본 아니면 김동욱 클래스의 시작 들을 생각임(영어)일단 단어는 워드마스터...
-
평소에도 애들 남탓 ㅈㄴ 심해서 에펨이랑 엘소드만 하고 있었는데 오늘 시험 끝나고...
-
작년에 오르비에서 느린맘이랑 투탑으로 많이본듯
-
ㅈㄱㄴ
-
[노베이스 20일의 기적 계획서] https://orbi.kr/00068773206...
-
많이길군요 이건 내일봐야겠다
-
구매하려고하면 자꾸 36만원 짜리 패스 사라는 것만 뜨네 원하는 강의 하나만 구매하고 싶은데
-
그것은 자야할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것이죠.
-
으악 두시라니 3
어서 자야해
-
생지 한과목씩 매일볼까요 격일로 한과목 3개씩 볼까요 개념 빈거 채우느라 오답이 좀...
-
재판을 잘 골라서 개재밌드라.. Durg운반책으로 두 명이 잡혔는데 한명은 이미...
-
데미지 1도 안 입으니 해도 됩니다 진짜 데미지 받는 건 수능 망하는 거니까요
-
내년수능 보는데 서성한 공대가 목푠데 사문지구가 낫냐? 아니면 걍 사탐 2개가...
-
뭐가 더 풀기 좋을까요?? 최대한 수능이랑 비슷한 난이도로 풀고싶습니다
-
은혼 띵곡 2개 3
사무라이 하트 프라이드 혁명 반박시 내말맞
-
ㅇㅇ
-
현역때보다 떨어진분 봄 뭐라 댓글을 달아야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지나감
정보글추
혹시 경한 논술 관련 질문드려도될까요..?
네~